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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 임태희 교육감 “대한민국이 어떻게 오늘을 이뤄냈는지 교육해야”임태희 경기교육감이 15일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개관식에서 축사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도교육청 제공] (국민문화신문) 구명석 기자=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이 대한독립과 만세운동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국적 있는 교육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오늘을 이루게 되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고 강조했다. 임 교육감은 15일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임 교육감은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은 평화와 정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은 그동안 독립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많은 분의 역사를 되새기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경기교육은 국적 있는 교육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오늘을 이루고 있는지 분명히 알도록 가르칠 것”이라며 “평화와 정의가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를 알도록 교육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 교육감은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이 경기도를 넘어 대한민국 모든 학생에게 역사를 생각하고 우리의 뿌리를 생각하는 장소, 미래 세대를 위한 배움과 교육의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화성시는 제암·고주리 학살사건과 화성지역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인근에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건립하고 이날 개관식을 했다. 독립운동기념관은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인근 3만7000㎡ 부지에 지상 1층, 지하 1층, 연면적 5414㎡ 규모로 지어졌다. 이곳에는 상설·기획·아동 전시실과 수장고, 교육·관리시설 등 기념관과 역사문화공원 등이 갖춰졌다. 상설전시실에서는 16일부터 개항기부터 광복까지 화성독립운동사를 주제로 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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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주년 용인 3·21 만세운동 기념행사 원삼면에서 개최이상일 용인특례시장(앞 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참석자들이 23일 구 원삼어린이집 야외무대에서 열린 용인 3·21 만세운동 기념 행사에서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국민문화신문) 최은영 기자 = 105년 전 대한민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용인 지역에 울려 퍼진 국민들의 함성이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서 재현됐다. 용인특례시(시장 이상일)는 23일 구 원삼어린이집 야외무대(원삼면 고당로16번길 3)에서 105년 전 일어났던 용인 3·21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고 밝혔다. 용인문화원 부설 기관인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고 원삼독립운동선양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이상일 용인특례시장과 독립유공자 후손, 지역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기념사, 축사, 기념 영상 시청, 애국지사 후손 소개, 만세삼창, 독립운동 퍼포먼스와 만세운동 재현 거리 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이상일 시장은 “105년 전 3월 21일 원삼면 좌찬고개에서 주민들은 우리나라가 자주독립국이라고 외쳤다”며 “일제의 속박과 탄압에 굴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나라를 되찾아 주셔서 자유를 누리며 번영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날은 우리에게 독립선언서가 옳았음을, 여전히 살아있음을 보여주고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다”며 “선언서를 준비하고 만든 것부터가 성공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정인보 선생이 지으신 ‘3.1절 노래’에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문구대로 선열들이 보고 계신다고 할 수 있다”라며 “이렇게 기념식을 여는 것을 보면 선열들과 연결돼 있음을 느끼고 만세 투쟁이 잊히지 않고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시장은 또 “대역사의 현장인 이곳은 이제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심장부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로 발전하는 변화가 진행 중”이라며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게 될 텐데 앞으로 이 큰일을 잘 완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념행사가 열린 원삼어린이집 야외무대는 지난 1919년 3월 21일 용인지역에서 최초로 원삼면 좌찬고개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던 시위대가 집결했다. 당시 만세운동에는 원삼면 주민 200여명이 참여했다. 야외무대 한 편에는 이를 알리는 만세 시위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시는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만세운동을 재현하기 위해 이달 각종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용인시청에서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렸고, 30일에는 수지구 고기초등학교 입구 머내만세운동 기념비에서 ‘제105주년 머내만세운동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같은 날 오후에는 신갈동행정복지센터 광장에서 ‘제105주년 기흥 3·30 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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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특례시의회, 제281회 임시회 개회21일 오전 용인특례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81회 임시회에서 윤원균 의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용인특례시의회 ) (국민문화신문) 구명석 기자=용인특례시의회(의장 윤원균)는 21일 본회의장에서 제281회 임시회 개회식과 제1차 본회의를 열었다. 윤원균 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1919년 3월 21일은 용인에 첫 만세의 외침이 울려 퍼졌던 용인만세운동 105주년이 되는 날이다. 오늘의 역사가 단순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과 염원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임시회는 2023년 회계연도 결산검사 위원을 선임하고 조례안 등을 심의할 예정이다. 심의 안건에 대해 내실 있는 심사를 부탁드리며, 결산검사에 선임되신 위원들은 예산이 당초 목적에 맞게 적법하고 효율적으로 집행됐는지 면밀히 검증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번 임시회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의 일정으로 개회되며, 조례안 10건, 공유재산 관리계획안 1건, 동의안 2건 등 총 13건의 안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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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특례시, ‘제105주년 3.1절 기념식’ 개최1일 용인특례시청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이상일 시장과 내빈, 보훈단체 관계자들의 모습 (국민문화신문) 최은영 기자 = “105년 전 오늘 대한민국 3000만 국민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 만세를 외쳤고, 그로부터 26년 후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독립을 간절하게 희망했던 순국선열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영광과 번영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1일 시청 에이스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이같이 말했다. 광복회 용인특례시지회가 주관한 이 행사에는 이상일 시장을 비롯해 보훈단체 관계자와 독립유공자 후손 등 약 3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최희용 광복회 용인특례시지회장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으로 모범 독립유공자 표창과 3.1절 기념영상시청, 특별공연, 3.1절 노래 제창과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기념식에서 이상일 시장은 애국지사 유족 시민인 김영배 씨와 김재하 씨, 김영옥 씨에게 모범 독립유공자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와 함께 권순제 씨와 김준희 씨가 윤원균 용인특례시의회 의장으로부터 독립유공자 표창장을 받았다. 아울러 독립을 염원하는 용인시민들의 함성을 재현하고 만세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긴 기념영상은 갑진년 새해 미래를 향한 용인특례시의 발전상도 담아냈다. 이어 소프라노 김희정 교수(경희대학교)와 테너 이동명 교수(백석예술대학교)가 가곡 ‘상록수’와 ‘그리운 금강산’을 아름다운 선율로 선사했고, 처인구 양지면에 있는 용동중학교 학생들은 만세삼창을 선창하면서 105년 전 대한 독립을 외쳤던 민족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상일 시장은 “다시는 외세의 침략을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과 안보태세를 갖고 후손들에게 3.1절의 교훈을 심어준다면 대한민국은 더욱 번영할 것”이라며 “순국선열에게 경의를 표하고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독립유공자 가족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제강점기 당시 용인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도 재현된다. 오는 23일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처인구 원삼면에서 3.21 만세운동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이어 30일에는 ‘머내여지도’가 주관하는 기념행사가 수지구 동천동에서 열리고, 같은 날 ‘기흥3.30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기흥구 신갈동에서 대한독립을 외쳤던 그날의 함성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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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특례시의회 유진선 의원, 기흥호수공원, 기흥미래 도시첨단 산단 인허가 등에 대해 시정 질문제273회 제1차 정례회 제2차 본회의-시정질문 유진선 의원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용인특례시의회 유진선 의원(신갈동,영덕1동,영덕2동,기흥동,서농동/더불어민주당)은 14일 제273회 제1차 정례회 시정질문을 통해 기흥호수공원, 기흥 미래 도시첨단 산단 인허가 등에 대해 질문했다. 유 의원은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흥호수공원을 횡단하는 보도교가 올 연말 완공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어 시민들이 기흥호수 둘레길을 보다 편하게 걸을 수 있어 빨리 완공되길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기흥저수지는 2007년 도시계획시설(유원지)로 결정되어 있는데 효력이 상실되는 2027년까지 기흥저수지 공원화 사업이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행정 절차 진행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하며 집행부의 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또한, 시장은 언론을 통해 기흥호수공원을 여가 공간이자 문화 향유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고, 수지구 죽전동에는 680 객석 규모의 죽전야외음악당이 있으나 기흥구에는 야외음악당이 전무해 야외에서 공연을 할 곳이 없다고 주장하며 기흥호수공원 야외음악당 건립을 요청했다. 두 번째로, 기흥미래 도시첨단 산단인 세메스 도시첨단 산단 조성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질문했다. 유 의원은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세메스가 기흥구 고매동 764번지 일원에 대해 2020년 8월 투자의향서를 접수하면서 산업시설용지에 94,442㎡, 25층의 건축 규모로 R&D 센터를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곳은 기흥IC 인근 고매교차로 사거리 바로 앞으로 동탄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요 가로망으로 동측 지방도 318호선(삼성2로), 북측 지방도 317호선(동탄기흥로), 남측으로는 기흥동탄 TG가 형성되어 있고 직선거리 1㎞ 이내에 삼성전자 기흥캠퍼스가 위치하고 있어 극심한 교통 정체로 교통 개선 요청 민원이 제기되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R&D 센터 등의 입주가 시작되면 더욱 극심한 교통 체증이 예측되는 곳으로 교통영향평가 등 협의 시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도시첨단산단 인허가 방식의 토지이용계획안을 보면 토지 이용의 극대화로 인해 세메스에도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여진다며 주민들의 민원도 원만하게 해소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삼성 세메스 기흥 미래 도시첨단산업단지 사업부지를 지나 고매교차로를 지나 좌회전해 좁은 도시계획도로(소로 2-149)를 지나 농서교를 지나면서 삼성전자 여자기숙사 앞이 나온다고 언급했다. 왼쪽으로 기흥 SDR 신축공사 현장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이번 정례회에 도시건설위원회로 안건 상정된 용인 도시관리계획(용도지역 변경, 기흥농서지구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안) 시의회 의견청취의 건에 해당하는 삼성전자 여자기숙사 인근 농서동 산 24번지 일원 부지가 있는데 일부를 용도 변경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동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삼성전자 어린이집이 318번 도로로 건너서 이전하게 됨에 따라 기흥구청에서는 바로 옆에 91억 8000만 원의 예산 규모로 용인도시계획도로 기흥 소2-150호 개설 추진을 하고 있는데 삼성전자 여자기숙사 중문이 있는 곳에서 도시계획도로(소로2-149)가 시작되는 곳까지는 현황도로라서 대형 공사 차량 및 출퇴근 버스, 승용차 등의 차량 통행량이 많다며 현황도로라서 시에서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니 개선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만드는 미래 용인르네상스 7대 시정목표 중 시민 중심 품격있는 문화와 관련해 질문했다. 최근 기흥농서지구 지구단위계획 변경안 등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두 위인의 생가터가 용인시 행정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 가고 방치되고 있어 시장의 시정목표에 의구심이 생겼다며 기흥구 농서동이 독립운동가 오석 김혁 장군과 시인 노작 홍사용 선생을 배출한 지역인지 알고 있냐고 물었다. 오석 김혁 장군은 기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항일전쟁 최전선의 민족투사이고, 노작 홍사용 선생은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대표작으로 끝까지 친일 활동을 하지 않은 항일 시인이라며 두 위인의 생가터는 현재 흔적도 없이 사라져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부지에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갈동 강남대학교 뒤에 ‘김혁 공원’이 만들어졌으나 미흡하고, 홍사용 선생의 업적을 기릴 수 있는 장소는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하며, 이는 용인시 행정의 오랜 무관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용인르네상스를 표방하는 이상일 시장의 집행부가 이 사안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삼성전자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생가터 안내판 설치, 생가터 복원 등 타 시의 사례를 검토해 용인시의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며 진정한 시민 중심의 용인르네상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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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용인특례시장, “104년 전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 이어갈 것”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이 25일 기흥3.30독립만세운동 기념식에서 시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이 25일 3·1운동을 기념해 관내에서 열린 만세운동 기념행사에 참여해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나라 사랑의 마음을 되새겼다. 이 시장은 이날 오전 수지구 동천동 고기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머내만세운동 기념행사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삼창을 외치는 등 선열들의 자주독립정신을 기렸다. 머내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당시 고기리와 동천리 주민 400여명이 수지면사무소로 몰려가 만세시위를 벌인 용인의 대표적 독립운동이다. 동천마을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용인시가 후원한 이날 행사에서 120여명의 참가자들은 머내만세운동 발상지인 고기초등학교에서 낙생저수지를 거쳐 동천근린공원까지 약 4km를 행진하며 태극기 물결을 수놓았다. 이 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104년 전 우리 선열들은 일제의 질곡과 속박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세계 만방에 밝혀주셨고, 용인에서도 이곳 고기리와 동천동에서 우리 민족이 깨어있음을 보여주셨다”라며 “우리 선열께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운동을 한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선열들은 기미독립선언서를 통해 ‘우리 후손들이 민족 스스로 살아갈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할 것이다’라고 그 숭고한 뜻을 밝히셨으며, 그 뜻을 이루어주셨다. 오늘 우리가 독립만세운동을 기리고 기억하는 까닭은 선열들이 피와 땀으로 물려주신 이 나라를 더욱더 발전시켜서 이 자리에 계신 시민들과 우리 어린이들이 더욱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에서도 선열들이 보여주신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정신과 후손을 위한 희생정신을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오후엔 기흥구 신갈동 행정복지센터 광장에서 열린 기흥 3.30독립만세운동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104년 전 3월 30일 당시 신갈천변에서 수십명의 군중을 지휘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김구식 선생을 비롯한 기흥 출신 애국지사 김혁 장군 등 선열들의 독립운동과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기흥3.30독립운동기념사업회 주관, 용인시 후원으로 개최된 기념식이다. 시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는 헌화와 기미독립선언문 낭독, 어린이뮤지컬단 리틀 용인의 기념공연으로 이어졌다. 이 시장은 기념사에서 “선열들이 기미독립선언서 공약삼장에 있는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요구를 당당하게 밝히라’는 내용 그대로 이곳 기흥에서 실천해주셨다”며 “선열들의 뜻을 이어받아 다시는 외침(外侵)을 허용하거나 나라를 잃는 일이 없도록 우리 안보 태세와 각오를 튼튼히 하자”고 말했다. 행사 후 신갈동 행정복지센터 광장을 출발한 참석자들은 김구식 선생의 애국심이 서려 있는 신갈천 개울번던의 기흥 3.30만세운동 표지석까지 약 1km를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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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년전 용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그날의 함성이 재현됐다원삼만세운동 거리 행진을 재현한 이상일 용인특례시장과 시민들 (국민문화신문) 최은영 기자 = 104년전 만세운동의 함성이 용인특례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서 재현됐다. 18일 처인구 원삼면에서는 지난 1919년 3월 21일 일어난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용인문화원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다. 지역 주민 약 300여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는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을 비롯해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애국지사들의 후손들도 함께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용인 지역에서는 처음 열린 3.21만세운동은 현재 원삼면에 위치한 좌찬고개에서 시작됐으며, 3월 한달 동안 14차례 만세운동이 일어나면서 백암면 등 용인 전역에 약 1만 3000여명의 시민이 모인 저항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날 행사는 104년전 만세운동을 되새기며 만세 삼창과 독립선언문 낭독이 이어졌다. 아울러 ‘리틀용인’ 소속 어린이들은 ‘뮤지컬 안중근’을 열연해 지역 주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행사에 참여한 이상일 시장과 지역 주민들은 만세운동이 시작된 좌찬고개부터 시작해 거리에서 만세운동을 행진을 펼쳤다.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104년전 3월 21일 용인의 순국선열들은 이곳 원삼에서 일제의 속박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우리 민족이 깨어있고 살아있음을 증명했다”며 “기미독립선언서 마지막 문구에 광명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는 문구가 있는데 우리 용인특례시민들이 선열의 얼을 이어받아 용인의 미래를 힘차게 개척해 나가자”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우리 선배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땀과 피로 지킨 만큼 우리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나라를 발전시켜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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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들을 기억합니다”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들을 기억합니다.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기념해 1975년부터 UN이 지정한 날이다. 수원에도 자랑스러운 역사 속 여성들이 있다.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귀감이 된 인물을 선정해 조명하고 있는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김향화(1897~미상), 안점순(1928~2018), 이선경(1902~1921) 등 세 명이다. 어두운 시대 상황과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딛고 수원을 넘어 대한민국을 빛낸 여성들의 삶을 기억해보자. ‘총칼 앞에서도 의로웠던 기생 김향화’ 김향화는 일제 강점기 매서운 총칼 앞에 의롭게 맞선 수원의 기생이었다. 1897년 7월16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향화의 본명은 순이였다. 생계가 어려워 불과 15~16세 때에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과 결혼했지만, 18세가 되던 해에 이혼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생계가 어려워진 가족들이 수원으로 이주하면서 김향화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1918년 발행된 ‘조선미인보감’에서 김향화는 검무와 승무에 능하고 구슬프고 애절하게 노래를 잘한다고 소개됐다. 당시 수원의 기생들은 의기가 높았다. 1월21일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27일 20여명의 수원기생들이 상복을 차려입고 서울 대한문 앞으로 가 망곡례를 올린 내용이 매일신보에 기록돼 있을 정도다. 또 자선공연을 통해 발생한 수익금을 수원상업강습소 학생들을 위해 내놓기도 하는 등 높은 민족의식으로 사회적 역할도 수행했다. 특히 1919년 3월 들불처럼 번졌던 수원지역 만세운동 중 김향화를 중심으로 한 수원예기조합 기생들은 일제의 총칼에 용감하게 맞섰다. 3월29일 자혜의원(화성행궁 봉수당)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던 30여명의 기생들이 경찰서 앞에서 태극기를 꺼내들고 만세를 외쳤다. 선두에는 김향화가 있었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가 총칼을 들이대며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합세해 시위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김향화는 경찰에 잡혀 주모자로 지목됐다. 이후 김향화는 2개월여의 감금과 고문 끝에 징역 6개월 판결을 확정받았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 재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19년 10월 가출옥한 김향화는 수원으로 돌아왔다. 이름을 ‘우순’이라고 바꾸고 지내다가 서울로 이주했다는 것 외에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난으로 기생이 되어야 했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에게는 2009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수원시가 공훈을 발굴해 서훈 신청을 이끌었으며, 표창장과 메달은 수원박물관 수원의 독립운동가 코너에 전시해 시민들에게 드높은 의기를 전하고 있다. ‘고통을 딛고 평화를 만든’ 안점순 안점순은 끔찍했던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널리 알리며 수원시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평화활동가다. 1928년 12월2일 서울에서 태어난 안점순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효심 깊은 소녀로 자랐다. 안점순은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말에 저울에 올라섰던 열네 살, 트럭에 그대로 실려 어머니와 생이별했다. 어딘지도 모를 사막 같은 곳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생활과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3년을 버텼다. 전쟁이 끝나자 버려진 안점순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광복군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석 달을 앓아 누웠던 안점순은 또다시 전쟁을 겪으며 피난생활을 하는 등 고된 삶을 이어갔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1991년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공개된 뒤 조카가 피해자로 등록만 했을 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단체 등이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 끝에 할머니가 된 75세 안점순은 세상으로 나와 날갯짓을 시작했다. 일본 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UN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국제노동기구 심포지엄에 참여하고,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전쟁의 피해를 낱낱이 밝혔다. 안점순의 활동은 수원지역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활동의 밑거름이자 원동력이 됐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립기금 7천여만원을 모아 2014년 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평화비가 세워졌다. 또 이를 계기로 수원평화나비가 창립돼 수원시와 자매도시인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에 유럽 최초의 평화비를 세우려 했으나 일본의 조직적인 방해로 무산됐다. 안점순과 수원시민의 끈질긴 노력은 2017년 3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순이’라는 이름의 소녀상을 세우는 결실을 맺었다. 89세 노인이 된 안점순은 제막식에 참석해 “험한 세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1년여 만인 2018년 3월30일 고단했지만 아름다운 삶을 마감했다. 수원시는 고통을 딛고 평화운동가로 거듭난 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 안점순을 수원시민사회장으로 배웅하고, 명예의 전당에 수원을 빛낸 인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 수원시가족여성회관 내에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만들어 그의 활동을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 ‘독립을 위해 불태운 열아홉 열정’ 이선경 ‘수원의 유관순’으로 알려진 이선경은 꽃 같은 19세의 나이에 순국한 수원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다. 이선경은 1902년 5월 수원군 산루리(현 수원시 중동)의 유복한 가정에서 2남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18년 수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숙명여학교로 진학해 1919년 3월 만세시위에 참여해 구속됐다가 무죄 방면됐다. 특히 수원지역에서 김세환의 시위 계획에 참여한 이선경은 각지의 연락업무를 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치마폭에 비밀문서를 숨기고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대전, 청주, 안성 등지로 수십차례 비밀지령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2학기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한 뒤 수원에서 서울로 유학하던 여성동지들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선경은 1920년 6월 서호 부근에서 박선태 등과 만나 수원 최초의 비밀결사 ‘구국민단’을 결성하고, 임원으로 활동했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하는 지식인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삼일여학교(현 매향중)에서 만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는 내용을 수원지역에 배포하는 논의를 했다. 특히 이선경을 비롯한 여학생들은 임시정부의 간호원이 되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러나 두 달여 만에 구국민단의 활동이 발각되면서 이선경도 체포되고야 말았다. 이선경은 체포 이후 일제 경찰에 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1921년 4월까지 140일간 구류됐는데, 이 기간 병을 얻어 재판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재판일이었던 1921년 4월12일 궐석재판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방면된 이선경은 수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지 9일 만인 4월21일 순국했다. 병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선경은 심문과정에서도 독립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석방된다면 다시 이 운동을 벌일 생각인지 묻는 일제에 “석방되어도 다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라고 답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선경은 순국 91년 만인 지난 2012년 3월1일 건국포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수원시는 명예의 전당에 그 자랑스러운 수원의 여성 이선경을 헌액해 기억하고 있다. 수원에서 만나는 세계 여성의 날 수원시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 115주년을 기념한 연계 전시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오는 10일까지 ‘수원시 여성문화공간 휴’의 로비와 계단 등에서 진행되는 특별프로그램 ‘2023 국립여성사전시관 순회전’이다. 전시는 역사 속 여성인물과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의 가치와 의미를 알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수원 출신 서양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1896~1948),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운동가인 이태영(1914~1998),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1901~1988),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최은희(1904~1984) 등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 속 여성 인물 10여명의 활약을 확인할 수 있다. 또 1898년에 발표돼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효시로 볼 수 있는 여권통문에 대한 설명과 여성운동 발전사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눈여겨볼 만하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도 있다.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의 ‘나부터 돌봄 챌린지 #소중한 나를 안아주세요’다. 오는 11일까지 나를 안아주는 사진을 홈페이지나 SNS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오프라인으로는 8일 가족여성회관 교육관 1층 로비에서 세계 여성의 날 역사와 의미를 알려주는 전시와 응원 메시지 게시, 챌린지 참여자 사진 전시 등을 진행한다. 수원시 관계자는 “수원시는 여성 인권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차별 없이 성평등한 수원시가 될 수 있도록 세계 여성의 날에 대한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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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3.1.운동 기념탑 준공식…항일정신 재조명안산시, 3.1.운동 기념탑 준공식…항일정신 재조명 (국민문화신문) 유한나 기자 = 안산시(시장 이민근)가 비석거리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재조명하고 만세 운동의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기 위해 건립한 ‘3·1운동 기념탑’ 준공식을 개최했다고 28일 밝혔다. 3·1운동 기념탑 건립사업은 광복회 안산지회 등 시민들의 오랜 숙원으로, 시 향토학자를 중심으로 꾸준히 추진해 온 안산 역사 바로알기 사업과 더불어 안산의 근현대사 찾기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지금의 상록구 수암동 비석거리는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경기도 시흥군 수암리로, 이곳에서는 1919년 3월30일 오전 안산지역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졌다. 2천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은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이장을 중심으로 마을단위로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당시 수암면의 인구가 8천여 명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노인과 아이를 제외한 많은 주민이 참여한 셈이다. 이러한 역사적 현장에 건립된 3·1운동 기념탑은 수암동 478-1번지에 총 8억5천900여만 원의 예산이 투입돼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시민들의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됐다. 특히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 일반적인 기념탑 형태가 아닌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뤄 예술성과 창의성을 반영해 제작됐다. 시는 3·1운동 기념탑을 주변 역사자원과 연계하여 3·1절 기념식, 8·15 광복절 기념식 등 각종 기념행사와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민근 시장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이름 모를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참여한 3·1만세운동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가 있다”며 “앞으로도 3.1정신을 계승하고, 안산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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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안성 3.1운동, 한반도의 맥을 잇는 거대한 역사 이야기안성 3.1운동기념관 (국민문화신문) 유석윤 기자 = 안성 3.1운동기념관은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에 위치한 곳으로 이곳은 안성지역의 만세운동과 관련한 유물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독립운동의 역사적인 자료를 실물 전시, 모형, 체험관과 영상물 등을 관람할 수 있도록 전시된 기념관이다. . 안성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양성 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이 독립만세시위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안성 전 지역에서 일어났다. 특히 4월 1일과 2일에는 원곡면 주민 1,000여 명이 원곡 면사무소에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양성 고개(또는 성은 고개, 현 만세고개)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주도자 최은식, 이유석, 홍찬섭, 이덕순, 이근수, 이희룡 등은 연설을 한 후 독립만세를 외치고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이때 동항리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던 양성면 주민들과 합세하여 2,000여 명의 연합 시위로 확대되었다. 시위 군중은 경찰 주재소, 우편소, 면사무소 등의 일제 식민통치기관과 일본인 상점 및 고리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하고 불태우는 항거를 통해 이 지역에서 일제를 완전히 몰아내 2일간의 해방'을 이뤄냈다. 이 지역의 만세운동은 당시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과 함께 민족대표의 재판에 원용될 만큼 격렬하여 3·1운동의 전국 3대 실력항쟁지 중 최고로 꼽힌다. 이를 기리기 위해 만세운동의 현장인 만세고개에 안성 3.1운동 기념관을 건립하고, 독립운동 선열들의 위패를 광복사에 안치하여 매년 4.1만세 항쟁기념식과 제례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이곳에는 전시관과 더블어 광복사가 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에는 조국의 독립과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328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안성의 독립운동은 우리 선열들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의병, 3·1운동, 계몽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며 독립의 불꽃을 이어나갔다. 안성의 애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는 이곳, 광복사에서 안성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기억하고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겨보아야 하겠다. 이곳 기념관은 그리 크지 않아 개인이나 가족 단체가 관람해도 1시간 정도면 충분히 관람이 가능한 곳이다. 안성 3.1운동기념관 둘러보기